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와카쓰키 레이지로 (문단 편집) === 2차 내각 === 1931년 다시 총리대신 직에 올랐으나, 그해 9월 18일 일어난 [[류탸오후 사건]]을 계기로 [[만주사변]]이 발생하였다. 당시 일본 국내의 강경파는 불경기에 대한 돌파 수단으로 만주 및 몽골에 대한 침략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었는데, 와카쓰키는 이에 거세게 반발하였다.[* 당시 중국정부에 만주침략에 대한 2차성명으로 군대철수까지 제안할 정도였다.] 의회를 무시하고 이미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 군부, 특히 육군[* [[만주사변]] 문서를 참조하면 알겠지만 애초에 그 자체가 육군의 자작극이었으니 당연히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. 이 당시의 육군대신은 훗날 [[내선일체]]와 [[창씨개명]]으로 악명 높은 조선총독 [[미나미 지로]]였다.]은 노골적인 항명을 하였으며, 심지어 내각의 일원이었던 아다치 겐조 내무대신이 "거국일치"를 주장하기에 이르자 내각에 대한 자신의 통제력을 상실했음을 깨닫고 사임하게 된다.[* 생각해보면 그 자신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다. 그의 후임이었던 [[이누카이 쓰요시]] 총리는 군부의 반발로 암살당한다. 그리고 우연의 일치이지만 2차 와카쓰키 내각 직전의 전임자였던 제27대 [[하마구치 오사치]] 총리도 암살 미수를 당해서 116일간 직무를 쉬었다가 피격 10개월 만에 후유증으로 사망했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